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最後─晩餐, The Last Supper)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운명하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마지막 만찬을 가리킨다. 성경적 명칭은 유월절 성만찬(성찬식)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벽화로 잘 알려져 있다.[1] '최후의 만찬' 즉 유월절 장면이 기록된 성경의 사복음서는 세계적 명화의 예술적 가치 그 이면에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언약이 실재했음을 알려준다.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 성만찬 자리에서 인류의 죄 사함과 영생을 위한 새 언약, 생명의 법도를 세우셨기 때문이다.
명화의 소재
'최후의 만찬'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카타콤(지하 묘지) 벽화에서부터 시작됐으며, 서양 종교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이다.[2]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받으신 전날, 열두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다.
과거 화가들은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보다 누군가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제작을 의뢰한 계층이 주로 귀족과 성직자였기에 당시 미술 작품은 역사화나 종교화에 치중돼 있었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그날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 제자의 배반 등이 주는 극적 긴장감이 있어 의뢰자나 화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였다.
또 '만찬'이란 주제 때문에 기독교 시설의 식당에 흔히 걸리는 그림 소재였다.[3]
최후의 만찬은 오랫동안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르네상스 회화의 선구자라 불리는 조토 디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최후의 만찬>, 북부 르네상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네덜란드 화가 디르크 바우츠(Dirck Bouts)의 <최후의 만찬>, 에스파냐 화가 후안 데후아네스(Juan de Juanes)의 <최후의 만찬> 등이다.[4][5] 그중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가장 유명하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95년부터 2년여에 걸쳐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수도원 식당에 그린 벽화다. 이 작품은 다빈치의 독창성, 형식미,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탁월한 방식 등으로 르네상스 전성기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곰브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해 "인간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위대한 기적들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6] 이밖에도 다수의 학자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의 예술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앤디 워홀을 비롯한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이미지를 차용해 패러디 할 정도로 시대를 초월해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7] 유네스코는 이 작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8]
주제와 장면
이 작품의 주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운명하시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나눈 '마지막 만찬'이다. 묘사된 장면은 예수님이 제자 중 한 명이 배반할 것이라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보인 반응이라고 한다.[9][10] 성경 요한복음에는 제자들이 서로 보며 배신할 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11] 다빈치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순간이다. 하나의 화폭 안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가 담겨 있다.[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해설에 따르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3명씩 네 무리의 제자들이 배치되었다.[13][14]
예수님 왼편에 나란히 있는 첫 번째 무리는 바돌로매,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안드레인데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두 번째 무리는 베드로, 유다, 요한이다. 성급한 베드로가 요한 쪽으로 기대어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있고, 요한은 무심코 유다를 앞으로 밀고 있다. 유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강조되었다. 가운데에서 깜짝 놀라 예수님 쪽으로 기대는 세 번째 무리는 도마, 야고보(요한의 형제), 빌립이며, 이들은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확인하느라 열심 내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쪽의 네 번째 무리는 마태, 다대오, 시몬으로 구성되는데, 그들은 열띤 토론에 빠져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있다.
<최후의 만찬>에는 상징적인 요소들도 묘사돼 있다. 베드로의 손에 들린 칼은 예수님을 잡으려는 병사의 귀를 베는 데 사용할 것을 암시하고, 유다의 손에 들린 돈주머니는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상징화했다고 한다.[15][16] 식탁 위에 놓인 떡과 포도주도 단순한 만찬 음식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음 날 십자가에서 찢기고 흘리실 살과 피를 상징한다.[17]
구도와 화법
이 작품의 구도는 15세기 당시 피렌체에서 같은 주제를 다룬 그림들과 아주 다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제자들을 배치하고 반대편에 유다를 따로 그려 배신자를 의도적으로 고립시킨 전통적 구도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유다를 포함해 세 명씩 네 그룹으로 나눠 일렬횡대를 이루게 했다.[18]
또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원근법'으로 짜여져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예수님의 머리에 위치한 소실점(消失點)을 중심으로 원근법이 표현되었는데, 이는 마치 그림 속 벽면과 실제 벽면이 이어져 벽 너머 공간에서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19]
동일한 주제를 다룬 이전의 그림들과 달리 예수님과 제자들 주변에 후광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다빈치는 뒤편 3개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으로 예수님을 감싸게 했다. 빛을 사용해 인물들의 입체감을 살리고 옷의 주름, 식탁 위의 접시 등 세부적인 요소까지 실감나게 묘사했다.[20]
“ 이 그림에는 동일한 테마를 다룬 이전의 그림들과 닮은 데가 하나도 없다. 이들 전통적인 그림들에서는 사도들이 식탁에 한 줄로 앉아 있고 유다만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으며 예수는 조용히 성찬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 새로운 그림은 이전의 전통적인 그림들과 아주 다르다. “ — 《서양미술사》 E. H. 곰브리치
다빈치는 화법(畫法)에 있어서도 기존의 방식을 탈피했다. 그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한 번 그리면 수정이 불가능한 전통적인 프레스코(fresco) 기법 대신 달걀노른자에 안료(顔料)를 섞어 그리는 템페라(tempera) 기법을 사용했다.[21] 템페라 기법은 세밀한 묘사와 환한 색채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벽화에 사용하면 벗겨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로 인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완성되기도 전에 곰팡이와 균열이 생기고, 식당의 습기로 그림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16세기 초반에 이미 그림 상태가 나빠졌다고 하며,[22] 홍수와 전쟁 등을 겪으면서 본모습을 잃게 되었다.[23] 1970년대 후반 이탈리아 정부가 복원에 나서면서 1999년, 20여 년 만에 복원된 그림이 세간에 공개됐다.[24]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관람 시간을 15분으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이 명화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밀라노를 방문하고 있다.[25]
'최후의 만찬' 성경적 명칭은 유월절
'최후의 만찬'의 성경적 명칭은 '유월절'이다.[17][26] 국어사전에서 '만찬(晩餐)'은 저녁 식사로 먹기 위하여 차린 음식 또는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먹는 저녁 식사를 뜻한다.[27] '만찬'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유월절 예식은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해진다.[28] 그래서 예수님도 이날을 기다려 저물 때에 열두 제자와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다.[9][17]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유월절을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의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기 전날 밤에 지키는 것이며,[29] 이날 행하는 성찬식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30]
유월절 예식 과정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과, 제자들이 도망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처절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죽어야 할 것도 아셨다. 참혹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이루기 위해 최후의 만찬 즉 새 언약 유월절을 예비케 하시고 이를 행하셨다.
유월절은 세족예식과 성찬식으로 이루어졌다. 세족예식은 말 그대로 '발을 씻기는[洗足]' 예식으로, 성만찬 전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겨주신 본을 의미한다.[31]
세족예식 후 예수님의 성체와 보혈에 참예하는, 유월절 성찬식이 거행됐다.
구분 | 내용 |
예비 |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유월절 만찬을 먹을 객실을 준비하게 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월절을 예비한다.[32][33][34] |
세족예식 | 유월절 저녁이 되어 마가의 소유로 전해지는 큰 다락방에 제자들이 모이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신다.[35]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긴 후 보여준 본을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신다.[31] |
유월절 성찬식 |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뜻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먹고 마시게 하여 죄 사함과 영생을 약속하고 새 언약을 세우신다.[36][37][38] |
유월절에 담긴 축복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예수님이 간절히 원하셨던 일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었다.[17] 그날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는 날이었다.[39][40]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구원이란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41][36]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42] 영생 그 자체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방법이 바로 유월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준비하도록 직접 명하시고,[32]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표상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라고 하셨다.[36]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셨기에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이 담긴 새 언약 유월절 지키기를 원하고 원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예수님의 유언, 새 언약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유월절 포도주를 가리켜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선포하셨다. 또 이 유월절을 "기념하라", 즉 오래도록 잊지 말고 지키라 말씀하셨다.[38] 새 언약은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전날 밤에 선포된 것이므로 예수님의 유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언은 유언한 사람이 죽었을 때 효력을 갖게 된다.[43] 예수님의 유언인 새 언약 유월절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효력을 발하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후로도 그리스도의 유언에 따라 계속해서 유월절을 지키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했다.[30]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리고 구원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음 다해 새 언약을 지키며 환난과 핍박에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44]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관련 영상
-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그림에 숨겨진 비밀
같이 보기
각주
- ↑ 최후의 만찬. 《표준국어대사전》.
『기독교』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밤에 열두 제자와 마지막으로 나눈 저녁 식사. ... 종교화의 제재로 주로 쓰이며,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벽화가 유명하다.
- ↑ 최후의 만찬. 《미술백과》.
최후의 만찬이란 주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카타콤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서양 종교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가운데 하나다.
- ↑ 최후의 만찬. 《교양인을 위한 바이블 키워드》.
최후의 만찬은 극적인 긴장감이 있기 때문에 화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예수는 자신이 처형되리라는 것, 유다가 배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식당 벽에 최후의 만찬을 그린 수도원은 많이 있다. 수사들이 식사할 때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그날의 식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 ↑ 스티븐 파딩. 최후의 만찬.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 마로니에북스.
- ↑ 스티븐 파딩. 최후의 만찬.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 마로니에북스.
- ↑ 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1997. 5. 1.), 《서양미술사》, 도서출판 예경,
<최후의 만찬>이야말로 인간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위대한 기적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 ↑ 르네상스 회화 걸작, 다빈치 '최후의 만찬'을 만나다. 《서울신문》. 2016. 5. 15.
작품은 500년 전 탄생 순간부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수많은 모사의 대상이 됐다. 20세기 들어서도 앤디 워홀을 비롯해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이미지를 차용해 패러디해 쓰기도 했다.
- ↑ Church and Dominican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with "The Last Supper" by Leonardo da Vinci. 《UNESCO》.
- ↑ 9.0 9.1 마태복음 26:20-22.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 ↑ 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1997. 5. 1.), 《서양미술사》, 도서출판 예경, 296쪽,
레오나르도는 그 이전의 조토처럼 성경의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가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하자 사도들이 너무 슬퍼서 모두가 예수께 "주여, 나니이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과연 어떠했을까를 눈앞에 그려보려고 노력했다.
- ↑ 요한복음 13:21-2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 ↑ 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1997. 5. 1.), 《서양미술사》, 도서출판 예경, 296-297쪽,
이 장면에서 운동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이 질문과 몸짓이었다. 예수는 방금 비극적인 말을 했고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이 계시를 듣고 공포에 놀라 뒤로 움츠리고 있다. 어떤 사도는 그들의 사랑과 죄 없음을 호소하는 것 같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누구를 지칭했는지 심각하게 논의하는 것처럼 보이며, 또 다른 사도들은 예수가 방금 말한 것을 설명해 달라고 예길길수를 쳐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와 도미니크 수도원 및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유네스코와 유산》.
전통적인 해석에서, 유다는 홀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예수와 다른 제자들은 테이블 건너편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러한 해석 방식을 거부하여, 예수를 제자들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예수의 양쪽에 3명씩 네 무리의 제자들을 배치하였다. 왼쪽에 나란히 있는 바돌로매, 소(小)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안드레는 예수의 선언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두 번째 무리는 베드로, 유다와 요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베드로는 요한 쪽으로 기대어 있고 요한은 예수 옆에 앉아 유다를 앞으로 밀고 있다. 유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분리하지 않으면서 강조되었다. 오른쪽의 무리는 마태와 다대오, 시몬으로 구성되는데, 그들은 열띤 토론에 빠져서 예수를 보지 않고 있다. 가운데에서 깜짝 놀라 예수 쪽으로 기대는 제자들은 도마와 대(大)야고보(요한의 형제 야고보), 빌립보이며, 이들은 예수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확인하느라 열심이다.
- ↑ 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1997. 5. 1.), 《서양미술사》, 도서출판 예경, 297-298쪽,
그들 중에 성미가 급한 성 베드로가 예수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성 요한에게 달려간다. 그가 무엇인지를 성 요한에게 귓속에 속삭일 때 무심코 유다를 앞으로 떼밀어 유다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는 않았으나 고립되어 보인다. 유다만이 몸짓도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는 몸을 젖히며 의심과 분노에 찬 모습으로 올려다보고 있는데 그의 모습은 이 갑작스러운 소란 속에 조용히 체념한 듯 앉아 있는 예수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 12사도들은 제스처와 움직임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는 세 사람씩 네 무리로 자연스럽게 구별되는 것처럼 보인다.
- ↑ Last Supper. 《Britannica》.
Peter, who is identified by the knife in his hand that he will later use to sever the ear of a soldier attempting to arrest Jesus, moves toward the mild-tempered John, who sits to Jesus’ right and appears to swoon. Judas, gripping the purse that contains his reward for identifying Jesus, recoils from Peter, seemingly alarmed at the other Apostle’s quick action.
- ↑ 최후의 만찬. 《미술백과》.
성격이 불 같은 베드로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려는 듯 요한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 성격이 급한 그는 스승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칼을 들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이 체포될 당시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자를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자 그의 불 같은 성격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유다는 열두 제자의 회계 담당이었으므로 돈 주머니를 들고 있는데 이는 또한 그가 은전 30냥에 스승을 팔아먹으리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 ↑ 17.0 17.1 17.2 17.3 누가복음 22:15-20.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 ↑ 파격, 긴장, 합리... '최후의' 르네상스 정신. 《공감》. 문화체육관광부. 2021. 5. 24.
다빈치는 예수를 중심으로 식탁 양쪽에 제자들을 배치하고 유독 유다만 건너편에 홀로 앉혀 배신자를 의도적으로 고립시킨 전통적 구도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식탁 가운데에 자리한 예수 양옆으로 여섯 명씩 일렬횡대를 이루는 파격적인 구성방식을 선보였다. 예수와 열두 제자 모두 식탁 한쪽으로만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뿐이다. 건너편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고 의자도 없애버렸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줄에 섞여 앉아 있는 유다의 모습은 자비를 베푸는 예수의 포용심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 ↑ 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1997. 5. 1.), 《서양미술사》, 도서출판 예경, 296쪽,
성경 이야기가 이처럼 가깝고 실감나게 그려진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또 하나의 홀이 수도사의 홀과 이어져 그 안에서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지고 손을 대면 만져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었으리라.
- ↑ 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1997. 5. 1.), 《서양미술사》, 도서출판 예경, 296쪽,
식탁 위에 떨어지는 빛은 얼마나 또렷했으며 또한 그 빛이 얼마나 인물들의 입체감을 살려주었을까? 아마도 수도승들은 식탁 위에 있는 접시나 의상의 주름 등의 모든 세부가 실감나게 묘사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 ↑ 파격, 긴장, 합리... '최후의' 르네상스 정신. 《공감》. 문화체육관광부. 2021. 5. 24.
보관성이 뛰어난 프레스코 벽화가 아니라 안료를 달걀노른자에 갠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 탈색과 손상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완성까지 오랜 구상이 필요한 다빈치의 작업 특성상 회벽이 마르기 전에 빠르게 제작을 끝내야 하는 프레스코 기법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 최후의 만찬. 《미술백과》.
16세기 초반부터 그림의 상태가 이미 나빠졌다고 한다.
- ↑ 불후의 명작이 넝마쪼가리로 변하다. 《주간동아》. 2004. 10. 15.
폭우 때문에 교회 바닥이 아예 물에 잠긴 적도 있었다. ... 1943년 이번에는 수도원 전체가 내려앉았다. 지붕과 벽체가 공습을 받고 폭삭 주저앉은 것이었다.
- ↑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조선일보》. 1999.5.6.
- ↑ 단 15분 만에... 걸작의 아우라에 빠지다. 《서울신문》. 2016. 6. 18.
다빈치 '최후의 만찬' 앞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
- ↑ Leonardo da Vinci. 《HISTORY.COM》.
The first is da Vinci’s "The Last Supper," painted during his time in Milan, from about 1495 to 1498. ... It depicts the Passover dinner during which Jesus Christ addresses the Apostles and says, "One of you shall betray me."
- ↑ 만찬. 《표준국어대사전》.
「1」저녁 식사로 먹기 위하여 차린 음식. 「2」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먹는 저녁 식사.
- ↑ 레위기 23: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 ↑ 누가복음 22:15.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 30.0 30.1 고린도전서 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 ↑ 31.0 31.1 요한복음 13: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 ↑ 32.0 32.1 마태복음 26:17-19.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 마가복음 14:12-16.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 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 ↑ 누가복음 22:7-13.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 ↑ 요한복음 13:1-5.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 ↑ 36.0 36.1 36.2 마태복음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 마가복음 14:22-24.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 38.0 38.1 누가복음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 ↑ 누가복음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 요한복음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 요한복음 6:53-5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 히브리서 9:15-17.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 ↑ 히브리서 11:33-38.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