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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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Jerusalem
예루살렘의 모습
나라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님
행정구역이스라엘 자국법상 이스라엘의 수도
면적125.1km²
해발750m
인구87.42만(2016년, UN Data 기준)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위치

예루살렘은 지중해 연안 평야와 요르단강(요단강)이 흐르는 계곡(그레이트리프트밸리) 사이의 산악 지역에 자리한 도시다. 다윗왕이 정복하고 그의 아들인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활동했던 예루살렘은 유구한 역사와 일련의 사건의 중심지로 기억되는 역사 도시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지리·종교적으로 그 영향력이 상당하다. 전 세계 20억 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의 최대 성지로 여겨지는 동시에,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이기도 하다. 성경에는 이 땅의 예루살렘과 별개로 하늘에 새 예루살렘이 있으며, 이 땅에 내려올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지명

이스라엘 문화재보존협회(The Council for Conservation of Heritage Sites in Israel)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예루살렘 구(舊)시가지에 있는 다윗의 도시 모습

예루살렘(히브리어: יְרוּשָׁלַיִם 예루샬라임, 아랍어: القدس 알쿠드스, 영어: Jerusalem)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에는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이 600회 정도 등장하며 다른 명칭으로도 불렸다. 빈번하게 사용된 다른 이름은 '시온'[1][2]으로 구약성경에 150여 회 나왔다. 그밖에는 살렘, 다윗성 등이 있다.[3][4][5][6]
하나님과 연관 지어 불리기도 했는데 '여호와의 성읍',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7] '여호와의 산'[8][9][10]이라는 칭호가 있다. 황폐되었다가 재건된 시온에는 '내 기쁨은 그녀에게 있다'는 뜻인 '헵시바'라는 이름이 주어진다고 했다.[11]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은 오히려 신약성경에는 몇 차례 등장하지 않는다.

지리

예루살렘은 지중해로부터 약 50km, 사해 북단에서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해발 750m[12]의 고원에 위치한 도시다.
지대는 남서로 눈에 띄게 기울어져 있으며,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시 125:2)라는 성경 표현처럼 사방이 높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서쪽에는 힌놈의 골짜기, 동쪽에는 감람산과 기드론 골짜기, 북쪽에는 중앙 산맥이 이어져 내려와 외세의 침략이 어려운 천혜의 요새다.

이스라엘 역사와 예루살렘

기원

살렘과 예루살렘

시편에서는 예루살렘을 살렘이라고도 했다.[3] 그래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살렘'을 예루살렘의 고대 명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아브라함 당시 살렘의 통치자는 멜기세덱이며 그는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13][14][15]

여부스 족속의 산성, 예루살렘

이스라엘 12지파가 분배받은 가나안 땅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가나안 산지에는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이 거했다.[16] 그중 예루살렘 지역은 아도니세덱이 통치하고 있었다.
아도니세덱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진멸했다는 소문을 듣고 몹시 두려워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대항하기 위해 다른 네 명의 아모리 왕들과 연맹을 결성해 여호수아와 동맹을 맺은 기브온을 공격했지만 전투에서 대패했다. 그날 여호수아가 전투를 마칠 때까지 태양은 종일 기브온에 머물렀다.[17] 아도니세덱을 포함한 다섯 명의 아모리 왕들은 결국 처형되어 나무에 달렸다.
한편 이 지역 일대를 분배받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성안에 있는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못했다.[18][19]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의 수중에 남아 있어 다윗의 때까지 여부스라고 불렸다.[20]

제1차 성전 시대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가나안 입성 후 약 400년이 지나 다윗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을 때 첫 번째 수도는 헤브론이었다. 다윗은 여부스 족속의 산성인 시온을 완전히 정복하고 증축해서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다.[21] 평범한 이방인의 도시였던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를 거치며 유대인 삶과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경은 이곳을 '시온 산성', '다윗성'이라고 표현한다. 나중에 다윗은 예루살렘 성밖 북쪽에 있는 모리아산의 정상에 있던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오르난과 동일 인물)의 타작마당을 구입했다.[22][23]

솔로몬의 성전 건축(제1성전-솔로몬 성전)

예루살렘 성전 지도

다윗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솔로몬은 아버지가 구입한 타작마당이 있던 모리아산에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착수했다.[24] 모리아산은 다윗성 북쪽에 인접한 장소였다. 18만 3300명의 인원이 동원됐으며,[25] 공사 기간이 7년 반이나 걸린 대규모 건축 사업이었다.[26]
모리아산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약 800년 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데려갔던 곳이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 대신에 숫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27] 솔로몬 시대에 이 모리아산에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것이다. 오늘날에는 흔히 성전산(Temple mount)으로 불린다. 시온산은 원래 다윗성이 있던 곳을 의미했지만, 이후 그 의미가 확대되어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모리아산 지역까지를 포함해서 시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28]

분열 왕국 시대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 북 이스라엘의 수도가 세겜, 디르사, 사마리아 등 여러 번 바뀐 데 반해 남 유다의 수도는 언제나 예루살렘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은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가진 수도이자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신앙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 이스라엘과의 잦은 국경 전쟁과 앗수르(아시리아)의 압박으로 남 유다의 정세는 점점 불안해졌고, 더불어 예루살렘 또한 끊임없이 약탈을 당했다.

  • 르호보암 통치 5년에 애굽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노략해 갔다.[29]
  • 아마샤 통치 때 북 이스라엘과의 싸움으로 예루살렘 성벽 일부가 부서지고 성전 기구가 약탈당했다.[30]
  •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뒤 남 유다 역시 위협을 받았다. 성경에 따르면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를 대비해 지하 터널을 만들어 기혼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31] 므낫세왕은 예루살렘성의 식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기혼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았다.[32]

바벨론 시대: 멸망과 포로 생활

예루살렘은 기원전 606년경 바벨론(신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손에 넘어갔고,[33] 586년경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모든 건물을 불사르고 성벽 사면을 전부 헐어버렸다. 또한 여호와의 전에 있던 기구들을 깨뜨리거나 바벨론으로 가져갔다.[34] 400년 동안 존속해 내려온 성전은 이렇게 파괴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삶의 터전과 전통을 상실한 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시작했다.

제2차 성전 시대

바사 제국 시대: 귀향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제2성전-스룹바벨 성전)

예루살렘 성벽 건축에 힘쓰는 느헤미야
  • 고레스의 성전 건축령
    남 유다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시작한 때로부터 약 70년이 흘렀을 무렵, 바벨론은 메대·바사(메디아∙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했다. 당시 바사 왕이었던 고레스(키루스 2세)는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고 그곳에 다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명했다. 게다가 과거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탈취해 신당에 두었던 성전 기구와 그릇들을 모두 꺼내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했다.[35]
    기원전 537년경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남 유다 백성들은 이듬해부터 총독 스룹바벨의 주도 하에 성전 건축에 착수했다.[36] 하지만 유다 백성이 포로 생활 하는 동안 예루살렘에 정착한 이방인들의 반대로 공사는 약 15년 동안 중단되었다.[37]
  • 성전 완공
    선지자 학개스가랴는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백성들을 일깨우며[38][39][40] 총독 스룹바벨을 격려했다. 기원전 520년경,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리오왕은 왕실의 창고에서 고레스의 조서를 발견했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선대 왕인 고레스가 허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리오왕은 성전 건축을 막지 말고 나아가 건설에 투입되는 비용은 나라의 세금으로 충당하라고 지시했다.[41]
    기원전 516년경에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었다.[42]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봉헌식을 행했으며 하나님의 절기를 지켰다.[43] 이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도 한다.
  • 예루살렘 성 중건
    50여 년 후 바사 제국의 관원으로 일하던 느헤미야는 고국의 예루살렘성이 여전히 훼파된 상태로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44] 그는 아닥사스다왕에게 성벽 중건을 위해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아닥사스다는 그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고 예루살렘성 재건을 위한 모든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조서를 내렸다.[45]
    기원전 444년경,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제사장과 귀인과 방백들을 불러모으고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자고 설득했다. 산발랏, 도비야 같은 대적자들이 온갖 훼방을 해왔지만 드디어 예루살렘성이 완공되었다. 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셨다는 사실을 대적자들도 느꼈고, 크게 두려워하며 낙담했다.[46]

헬라 제국과 하스모니안 왕조의 탄생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바사 제국을 비롯해 마케도니아에서부터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헬라 제국을 건설했다. 알렉산더 사후에 휘하의 장군인 '셀레우코스'가 시리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셀레우코스 왕조'가 시작됐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에게 헬라 신앙을 강요하며 수많은 핍박을 가했다. 이 같은 정책에 유다 마카베오가 셀레우코스 왕조에 무력으로 항쟁했고, 마침내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165년경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했고 성전 내 제우스 신상을 파괴했다. 성전을 정화한 뒤 새 번제단을 하나님께 봉헌했다. 이는 유대인의 명절인 수전절의 유래가 되었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70여 년간 유지되던 하스모니안 왕조는 해체되고 유대는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또 한 번 점령되었다.

로마 제국의 지배와 헤롯의 성전 건축(헤롯 성전)

헤롯 성전 모형도

로마의 신임을 얻어 이두메('에돔'의 헬라식 지명) 출신이지만 갈릴리를 통치하게 된 헤롯(헤롯 대왕)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증축했다. 그는 성벽을 이전보다 두 배나 넓게 두르고 무척 화려하게 지었다.[47]
공사는 예수님께서 복음 활동을 하실 때까지도 계속됐다.[48] 기원전 20년경에 착공해 헤롯 사후인 기원후 64년경에 웅대하고 화려한 헤롯 성전이 완공되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기간에 예루살렘에 입성해 복음을 전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49] '예루살렘에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시작된다'[50]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루살렘은 초대교회 복음의 전진 기지였다.[51][52]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성도들은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두루 전하게 됐다.[53]

예루살렘의 멸망

A.D. 70년 티투스 휘하 로마군의 예루살렘 포위와 파괴. 데이비드 로버츠(1796-1864), 1850년

66년경 유대인들은 로마에 저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67년 봄, 로마 제국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군단을 이끌고 와서 몇 주 만에 갈릴리를 장악하고, 68년에는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들어갔다.
68년 여름, 네로 황제의 죽음으로 잠시 포위를 풀었고 이후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돌아갔다. 그의 아들 티투스는 70년 봄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며, 몇 개월 뒤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시켰다. 예수님 예언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졌고,[54] 110만 명이 죽고 9만 700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 [55] 예루살렘 성전은 완공 6년 만에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과 예루살렘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솔로몬이 이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운 이후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에는 늘 예루살렘이 있었다.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고향이었다. 성경 속에는 불가항력적 상황으로 예루살렘을 떠나게 됐을 때에도 마음만큼은 예루살렘에서 떠나지 않고 그리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56][57] 70년에 예루살렘이 처참히 멸망한 후에도, 예루살렘에 대한 유대인들의 갈망은 흔들리지 않았다.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살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예루살렘의 재건을 염원했다.[58]

오늘날의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독립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는 벤구리온 수상

70년에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여러 종족과 종교가 예루살렘을 지배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았고, 남은 사람들은 외세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다. 로마의 직접 통치를 받던 예루살렘은 그 후로 비잔틴(동로마) 제국에서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공방이 계속되면서 두 세력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다. 1517년 이래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으나 1차 대전 중인 1917년 영국에 함락, 1920년부터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이 영국의 위임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종전 후인 1947년 11월 2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 독립을 가결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948년 5월 14일(금) 오후 4시,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벤구리온 수상이 독립 헌장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적이며 본질적인 권리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울 것을 선언한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끊임없는 분쟁

성전산 서쪽 통곡의 벽 광장
통곡의 벽 돌틈 사이에 빼곡히 들어 있는 소원 쪽지들

이스라엘이 독립 헌장을 발표한 그날 밤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뉘어 요르단령과 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됐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은 동 예루살렘까지 점령했고 1977년 수도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공식 이전했다. 1980년 7월에는 '예루살렘은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는 내용의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유엔(United Nations)유엔 결의안 194호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은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59][60] 1980년에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고(유엔안전보장이사회 478호 결의) 모든 회원국들의 대사관을 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현재 이스라엘에 주재하는 각국의 대사관과 대표부는 텔아비브에 있으며 사실상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국법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있다.[61]
안타깝게도 오늘날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 되었고, 종교적으로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62]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고난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신 곳이다. 유대교 입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산이 위치하고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장소이며, 이슬람교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이곳에서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어느 종교도 양보할 수 없는 성지가 예루살렘이다.
638년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성전산 위에 이슬람 사원인 알 아크사 모스크를 세웠으며, 1099년 기독교 군단인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지 확보 차원에서 예루살렘왕국이라는 봉건국가를 세웠다.[63] 성전산 서쪽에는 옛 성전의 외곽에 있던 높이 18m의 벽이 일부 남아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을 성지로 삼아 방문하는데 이것이 통곡의 벽이다.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에서는 두 민족의 주권 분쟁과 세 종교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경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하늘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거하는 하나님의 도성이다.[64] 또한 하늘 예루살렘은 천국 혼인 잔치의 신부를 표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신부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이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을 보여주었다.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요한계시록 21:9-10

한편 사도 바울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바로 구원받을 성도들의 어머니라고 기록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 갈라디아서 4:26-31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실체는 바로 우리 영혼의 어머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했으며, 힘들 때마다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다. 영적 유대인인 구원받을 성도들은[65]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자들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시편 122:6-7)
  •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이사야 66:10-14)

같이 보기

각주

  1. 이사야 4: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2. 이사야 62:11.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3. 3.0 3.1 시편 76:1-2.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4. 사무엘하 5:7-9.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5. 사무엘하 6:10-16.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6. 느헤미야 3: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7. 이사야 60:14. 너[예루살렘]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8. 이사야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9. 이사야 66:2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10. 이사야 66:20.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11. 이사야 62:4.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12. 《이스라엘 개황》, 대한민국 외교부, 2021, 8쪽
  13. 창세기 14:18.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4. 《CLP성경사전》, 기독교문사, 1995, 635쪽, "Salem 뜻은 '평화'. 멜기세덱이 왕이었던 성읍의 이름. 유대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과 동의어로 간주한다(창 14:18; 히 7:1, 2)."
  15. 《CLP성경사전》, 기독교문사, 1995, 819쪽, "예루살렘(살렘)의 초기 왕은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그 의미는 '의의 왕'이었다(창 14:18-20)."
  16. 민수기 13: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17. 여호수아 10:1-27.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 이러므로 아모리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18. 여호수아 15: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19. 사사기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20. 사사기 19:10.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21. 사무엘하 5:5-9.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22. 사무엘하 24:16-25.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23. 역대상 21:18-27.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붙이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붙이라 ... 그 기지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24. 역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25. 열왕기상 5:13-16. 이에 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에서 역군을 불러 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이라 ... 솔로몬에게 또 담군이 칠만 인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 인이며 이 외에 그 역사를 동독하는 관리가 삼천삼백 인이라 저희가 일하는 백성을 거느렸더라 
  26. 열왕기상 6:1, 38.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 제 십일 년 불월 곧 팔월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전이 다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 년이었더라 
  27. 창세기 22:2-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8.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전기》, 유달승 역, 시공사, 2012, 77쪽, “솔로몬 왕은 오래된 성벽을 확장하여 모리아산을 요새화했다. 그후부터 '시온'이라는 이름은 원래의 요새와 새로운 성전산을 함께 가리키게 되었다.”
  29. 열왕기상 14:25-26. 르호보암왕 제 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의 만든 금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30. 열왕기하 14:11-14.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31. 역대하 32:30.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32. 역대하 33:14. 그 후에 다윗성 밖 기혼 서편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생선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심히 높이 쌓고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장관을 두며 
  33. 열왕기하 24:1-7.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34. 열왕기하 25:1-17.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 년 오월 칠 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가고 빈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35. 에스라 1:7-11. 고레스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 ... 금, 은 기명의 도합이 오천사백이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 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 
  36. 에스라 3:8-13.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 지 이 년 이월에 ...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 
  37. 에스라 4:1-6.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 
  38. 학개 1:4-9, 13.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39. 학개 2:3-9.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0. 스가랴 4:6.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41. 에스라 6:1-14.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메대도 악메다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고레스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 하나님의 전 역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로 하나님의 이 전을 본처에 건축하게 하라 ...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42. 에스라 6:15. 다리오왕 육 년 아달월 삼 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43. 에스라 6:16-22.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니 ... 정월 십사 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 즐거우므로 칠 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로 즐겁게 하시고... 
  44. 느헤미야 1:1-3.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 ...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45. 느헤미야 2:1-8.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46. 느헤미야 6:15-16. 성 역사가 오십이 일만에 엘룰월 이십오 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47.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1》, 박정수 외 역, 나남, 2008, 109쪽, “이리하여 헤롯은 자신의 재위 15년에 성전을 재건하였고, 성벽을 확장하여 과거보다 두 배나 넓은 지역을 성벽으로 둘렀다. 그는 여기에 엄청난 비용을 사용했고, 또한 과도하리만큼 화려하게 지었다.”
  48. 요한복음 2: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49. 누가복음 9:31.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50. 누가복음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51. 사도행전 1: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2. 사도행전 2:1-47.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53. 사도행전 7:57-8:4.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54. 마태복음 24:1-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55. 《대세계의 역사》제3권, 삼성문화개발, 1990, 152-153쪽, A.D. 70년 ... 예루살렘 공략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베스파시아누스제의 아들 티투스는 14군단을 이끌고 4월부터 9월 말까지 격심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리하여 신전도 성벽도 도시도 다 불타버려 다만 기왓장과 흙덩이만 뒹굴 뿐이었다. ... 포위 공격 되어 전사한 자가 110만, 포로 9만 7천이라 전해진다.
  56. 시편 137:1-6.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고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 
  57. 다니엘 6:6-10.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58.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전기》, 유달승 역, 시공사, 2012, 251쪽, “예루살렘에 대한 유대인들의 갈망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살든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져 우리 시대에 곧 성전이 재건되기를.”
  59. 팔레스타인 반환권: 유엔 결의 194호. 《유엔뉴스 유엔신문》. 2020. 12. 14. 
  60. 유엔 결의 194호. 《한겨레21》. 2006. 12. 7. 
  61. 유대·기독·이슬람교 성지 예루살렘…끊이지 않는 '피의 쳇바퀴'. 《매일경제》. 2017. 12. 7. 
  62.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전기》, 유달승 역, 시공사, 2012, 847쪽, “1000년간 예루살렘은 배타적인 유대교 지역이었다.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이었다. 1300년간은 이슬람 지역이었다. 그 세 종교들 중 어느 것도 칼, 투석기, 또는 곡사포 없이는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했다.”
  63. [오늘의 역사] 1099년 7월 15일 제1차 십자군, 예루살렘 정복. 《매일신문》. 2021. 7. 14. 
  64. 히브리서 12:22-23.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65. 로마서 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