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하나님의 교회 지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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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Jericho
옛 여리고 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성된 현대 소도시 여리고의 전경
면적36,421㎡(9에이커)[1]
해발지중해 기준 -250m
위치사해에서 북서쪽 10㎞ 지점, 요르단 지구대 가장자리
특징가나안의 관문

여리고(Jericho, 히브리어: יְרִיחוֹ)[2]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한 가나안 지경 첫 성이다. 40년간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다.

여리고의 지리적 특징

위치

후고 헤르만, 〈1931년 팔레스타인 조감도〉

여리고는 요르단 지구대[3] 내, 사해에서 북서쪽으로 10㎞ 지점, 요르단 계곡의 가장자리에 있는 도시다. 가나안 중부의 경계에 위치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진입하기 위한 주요 관문이었다. 해발 고도는 지중해 해수면보다 약 250m 낮다. 수목이 우거진 오아시스라 '종려나무 성'이라고도 불렸으며,[4] 여리고 서쪽으로는 예루살렘이 있는 고원 지대까지 광야가 펼쳐져 있다.

팔레스타인 쪽에서 바라본 요르단 계곡(베이트셰안~여리고)

역사

옛 여리고 터를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여리고에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것이라 추정했다.[5] 그에 따르면 여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6] 오래전부터 가나안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여리고성은 기원전 15세기경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소화되었다. 성경은 이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후 이스라엘의 존속과 함께한 여리고는 성경 곳곳 다양한 사건 가운데 등장한다.
로마 시대에는 유대 분봉왕인 헤롯이 여리고에서 남쪽으로 약 1.6㎞ 떨어진 곳에 별장 격인 겨울 궁전을 지으면서 도시의 중심이 그곳으로 옮겨갔다.[7][8]

구약성경 속 여리고

가나안 정복기

  • 여리고 정탐

기원전 15세기경,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40년을 마칠 즈음,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9]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 처음으로 정복한 성은 여리고였다.
모세가 죽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기에 앞서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냈다. 여리고 군사들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했던 정탐꾼들은 라합이라는 여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때 라합과 그 가족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약속하고 성을 빠져나와 여호수아에게 보고했다.[1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평지의 싯딤을 떠나 요단강 가에 도착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흘러넘치던 강물이 멈춰 멀리 위쪽에 쌓이고 백성은 여리고 쪽으로 바로 건넜다.[11] 1월 10일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동편 길갈에 진을 치고,[12]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례를 행한 뒤 그달(1월) 14일 저녁에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다.[13]

  • 여리고 정복

여리고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일절 출입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를 이미 그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하시며, 여리고성 주위를 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라고 하셨다. 7일째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돌고,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 때에 모든 백성이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면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했다. 드디어 7일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일곱 바퀴 돈 후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자 백성들은 일제히 크게 외쳤다. 그러자 견고한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14]
성이 무너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제히 성에 들어가 성중에 있는 것을 멸하고 불살랐다. 다만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과 그의 가족들은 약속대로 살려주었다.[15] 그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금과 은, 동철 기구들은 하나님의 곳간으로 옮겼다. 여호수아는 누구든지 여리고성을 다시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되, 성의 기초를 쌓을 때에 맏아들을 잃을 것이고, 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16]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하셨고,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졌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중부에 위치한 여리고를 시작으로 아이, 예루살렘,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게셀 등 가나안 남부, 북부를 차례로 정복했다.[17] 하나님이 "발이 닿는 곳마다 네 지경이 되리라"[18] 하신 축복대로였다.

왕국 시대

엘리사의 샘으로 알려진 여리고의 수원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이후 여리고는 베냐민 지파의 영토로 분배되었다.[19] 여호수아 죽음 이후 사사 시대에 모압 왕 에글론에게 정복되었다가 사사 에훗이 모압을 항복시킨 적이 있다.[20]
여호수아 이후 약 500년이 지나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시기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에 성을 다시 세웠다. 여호수아의 예언 그대로 히엘이 터를 쌓을 때 맏아들 아비람을 잃고,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다.[21]
왕국 시대에는, 암몬에서 수염이 잘린 이스라엘 사신들이 남의 이목을 피해 잠시 거한 곳,[22] 선지자 엘리야승천하기 전 엘리사와 함께 이른 곳,[23] 엘리사가 샘물을 고쳐준 곳,[24] 북 이스라엘 군사들이 포로 삼은 남 유다 백성들을 풀어준 곳,[25]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 군대에게 붙잡힌 곳[26] 등으로 등장한다.

신약성경 속 여리고

  • 여리고의 소경에게 베푼 기적

예수님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리고를 향해 갈 때, 길에서 바디매오라는 소경이 소리 지르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다. 예수님은 소경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눈을 만져 보게 해주셨다. 그때부터 그는 예수님을 좇았다.[27]

  • 삭개오

예수님이 여리고에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자 길가의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시고 '네 집에 유하여야겠으니 내려오라'고 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머문다며 수군거렸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는데,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는 유대인들에게 로마 제국의 앞잡이이자 죄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삭개오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다. 이는 구원자를 영접한 기쁨에 나온 말이었다. 그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셨다.[28]

  •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무대
여리고 주변의 광야

예수님은 비유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 만난 자를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하셨다.[29] 예루살렘은 고원(해발 약 700m)에 있고 여리고는 낮은 지대에 있는 도시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에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표현되었다. 예루살렘과 여리고 사이는 광야, 즉 황량한 사막 지대여서 강도의 출몰이 잦은 위험 지역이었다고 한다.[30]

같이 보기

각주

  1. Bryant G. Wood, "RESEARCHING JERICHO," Bible and Spade, Vol. 22, No. 3, 2009., "The total area of the city, including the fortification rampart, was about 9 acres, with a circumference of about ½ mile."
  2. "יְרִיחוֹ". 《네이버 고대 히브리어사전》. 
  3. "요르단지구대",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서아시아의 요르단강, 사해(死海), 아카바만을 잇는 낮은 지대를 이르는 이름. 길이는 500km."
  4. 역대하 28:15. 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이르러 
  5. "예리코",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 제16권,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4, 34쪽, "탄소동위원소법에 의해 BC 9000년경으로 측정된 먼 옛날에 중석기의 수렵민들이 찾아왔으며, 그들의 후손이 오랜 기간에 걸쳐 정착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마을은 도시라는 용어에 걸맞게 규모가 꽤 컸으며, 주민은 약 2,000-3,000명에 이른 듯하다."
  6. "여리고", 《CLP성경사전》, 기독교문사, 2013, 980쪽, "아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동쪽에서 블레셋으로 가는 무역로를 장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건설된 것 같다."
  7. "예리코",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 제16권,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4, 34쪽,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리코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와디 알쿨트에 있는 웅장한 건물의 정면은 헤로데 궁전의 일부인 듯하며, 궁전양식은 완전한 이탈리아식으로 헤로데가 얼마나 로마를 선호했는가를 나타내준다. 로마 시대 예리코의 중심지가 된 이 지역에서는 아름다운 건물들의 지취도 찾아볼 수 있다."
  8. 폴 라이트, 《손에 잡히는 성경 지도》, 이용중 역, 부흥과개혁사, 2014, 279쪽, "헤롯이 세운 신약시대의 여리고는 ... 비옥한 충적토, 연중 마르지 않는 샘, 늘 화창한 날씨 등의 요인이 결합되어 여리고는 터를 잡고 살기에 안성맞춤이 곳이 되었다. ... 헤롯의 겨울 궁전이 있던 여리고는 향유 때문에 부요한 도시가 되었다."
  9. 민수기 33:48–49 "아바림산에서 발행하여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미쳤었더라"
  10. 여호수아 2:1–24
  11. 여호수아 3:14–17
  12. 여호수아 4:19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
  13. 여호수아 5:2–12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14. 여호수아 6:1–2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 제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뿐이었더라 ...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15. 여호수아 6:16–19, 22–25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16. 여호수아 6:26 "여호수아가 그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17. 여호수아 12:7–24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 도합 삼십일 왕이었더라"
  18. 여호수아 1:1–4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19. 여호수아 18:21 "베냐민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성읍들은 여리고와 벧 호글라와 에멕 그시스와"
  20. 사사기 3:13–30.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 ...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 그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21. 열왕기상 16:23, 34 "유다 왕 아사 제삼십팔 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22. 사무엘하 10:1-16. 
  23. 열왕기하 2:1–15. 
  24. 열왕기하 2:19-22. 
  25. 역대하 28:1-15. 
  26. 예레미야 52:4–11. 
  27. 마가복음 10:46–52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28. 누가복음 19:1–9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29. 누가복음 10:30–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0. 가스펠서브, "여리고", 《라이프성경사전》, 생명의말씀사, 2006, "여리고는 지중해 수면보다 약 250m 낮았던 반면 예루살렘은 해발 약 790m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급한 내리막길이었고 지형이 험하여 강도들의 출몰이 잦았다고 한다(눅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