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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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Jeremiah
에두아르드 벤데만, <예루살렘 폐허에 앉아 있는 예레미야>
시대B.C. 650-B.C. 580년경
가족 관계아버지: 힐기야(아나돗의 제사장)
출생지베냐민 땅 아나돗
직업(특징)선지자
활동 지역예루살렘, 애굽

예레미야(Jeremiah)는 남 유다요시야 제13년에 사역을 시작해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되는 전 과정을 지켜본 선지자다. 죄악이 관영한 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이 작정되었음을 선포하고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멸망으로 치닫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며 눈물이 마르지 않았기에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얻었다.[1] 구약성경 예레미야서를 기록했다.

시대적 배경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아시리아)에 멸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기원전 7세기, 유다 왕국도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 부패할 대로 부패한 제사장들과 지도자들, 백성을 일깨우기 위해 하나님은 요시야왕을 세워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회복했다. 그러나 요시야왕이 죽은 뒤, 유다 백성은 또다시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져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바벨론(신바빌로니아), 애굽(이집트)의 세력도 재편되었다. 30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하던 앗수르가 무너지고 바벨론이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이에 애굽 왕 느고 2세가 바벨론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갈그미스로 북진하자 유다 왕 요시야는 군대가 지나는 길을 막고 므깃도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2][3] 이후 유다는 애굽의 내정간섭을 받았다.
점차 세력을 키운 바벨론은 애굽을 상대로 한 갈그미스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다. 유다를 침공한 바벨론은 예루살렘의 성전 기명과 기구는 물론, 일부 왕족과 귀족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4] 하나님의 예언대로 유다 민족은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5][6]

예레미야의 주요 활동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야. 렘브란트(Rembrandt)의 유화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예루살렘 멸망과 회복을 예언

예레미야는 앗수르의 붕괴, 메대와 신바빌로니아의 발흥이라는 대격동기에 활동한 선지자다. 당시 남 유다 요시야왕은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의 종교개혁이 유다 민족의 정신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왕 제13년에 사역을 시작해서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대와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제11년까지 약 40년간 활동하며, 유다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유다 멸망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깨뜨린 죄악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여러 가지 상징 행동으로 백성들의 잘못을 일깨웠다(썩은 허리띠,[7] 토기장이의 비유,[8] 흙으로 만든 병,[9] 좋은 무화과와 악한 무화과,[10] 멍에와 줄,[11] 책을 돌에 매달아 강에 던지기[12] 등).

또한 예레미야는 70년이 지나면 하나님이 바벨론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말씀도 전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예레미야 29:10


눈물의 선지자

'눈물의 선지자'는 예레미야의 별명이다.[13]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멸망으로 달려가는 백성들이 안타까워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가 멸망으로 치닫는 시대에 선지자의 소명을 받아 바벨론의 1, 2, 3차 예루살렘 침공을 모두 겪었다. 그는 유다의 왕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재앙과 멸망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우습게 여기고 도리어 예레미야를 조롱하며 핍박하고 죽이려 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 예레미야 9:1


예레미야의 고난

예레미야는 유다 지도자들을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로 데려갔다. 힌놈의 골짜기는 왕국 시대에 바알과 몰렉 등 이방 신에게 희생 제사가 드려졌지만 요시야가 부정하게 만들어버렸던 곳이다.[14] 예레미야는 지도자들이 보는 앞에서 병을 깨뜨려 예루살렘의 임박한 멸망을 알렸다.[9] 성전에 돌아와서도 백성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성전 총감독이자 제사장이었던 바스훌[15]은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때리고 옥에 가두어 차꼬를 채워두었다. 예레미야는 바스훌에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거기서 죽으리라 예언했다.[16]

여호야김 제4년, 예레미야는 그동안 받았던 계시를 모두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자신의 서기관이자 동료인 바룩을 불렀다. 예레미야는 요시야왕 제13년부터 여호야김 제4년까지 23년간 하나님께 받았던 말씀을 바룩에게 들려주고 두루마리에 기록하게 했다. 감금 상태라 성전에 갈 수 없었던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이 글을 백성들 앞에서 읽으라고 했다.
여호야김 제5년 9월에 예레미야의 말대로 바룩이 행하니, 미가야가 이 말씀을 듣고 왕궁에 모인 방백과 서기관들에게 가서 이 일을 고했다. 그들은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두루마리를 가지고 오라 하고 이를 기록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바룩의 설명을 들은 방백들은 두루마리는 자신들에게 주고, 바룩은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몸을 숨기라고 했다. 방백들이 왕에게 두루마리에 대해 고하자 여호야김왕은 여후디에게 글을 낭독하게 했다. 그리고는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화로에 던져 모두 불태워버렸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루마리에 기록했던 모든 말씀을 다시 기록하라고 명하셨다.

바벨론 2차 침공이 있은 직후,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으로 가던 길에 성문을 지키던 문지기에게 잡혀 방백들 앞으로 끌려갔다. 문지기는 방백들에게 예레미야가 갈대아인(바벨론)에게 항복하러 가는 길이라며 거짓을 고했다. 화가 난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요나단 집 토굴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드기야왕이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멸망할 것과, 평안을 예언하던 선지자들의 거짓됨을 드러냈다.
시드기야왕의 도움으로 시위대 뜰에 머무르게 된 예레미야는 거기서도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서 방백들의 노여움을 샀다. 급기야 방백들은 왕에게 몰려가 예레미야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시드기야왕이 예레미야를 그들에게 넘기자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줄에 달아 시위대 뜰의 물 없는 진흙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왕궁 환관 에벳멜렉은 모든 사정을 왕에게 고하고 선처를 부탁했다. 이에 시드기야왕은 사람을 동원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구해내라고 명했다.

하나냐는 바벨론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반박한 거짓 선지자였다. 남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 등 친애굽파와 결탁해 바벨론에 대항했다. 예레미야는 멍에를 만들어 소처럼 목에 메고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바벨론이 유다 백성의 목에 멍에를 메게 할 것이라 예언하며 바벨론을 섬기라고 했다. 시드기야 제4년 5월, 앗술의 아들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리고,[17]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앗아간 성전 기명과 바벨론으로 잡혀간 포로들이 두 해가 되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거짓 예언을 했다. 그 벌로 그는 두 달 후에 죽었다.[18][19]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에게도 바벨론에 복종하면 평안하고, 70년 후에는 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바벨론에서도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반대했다.[20]

기원전 586년경,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되었다. 기원전 606년경과 597년경에 남 유다는 이미 두 차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다. 두 번의 침공으로 다니엘, 에스겔을 포함한 왕, 지도자, 귀족, 기술자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세 번째 침공의 피해는 더욱 처참했다.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어 밖으로 연결된 길이 모두 차단된 예루살렘 성안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졌다. 예루살렘 성전은 물론 왕궁과 백성들의 집도 불살라졌고, 성벽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유다에 남아 있던 백성들도 빈천한 자 외에는 모두 끌려가고 남 유다 왕국은 완전히 멸망했다.
아름답고 영화로웠던 예루살렘이 하루아침에 이방의 비웃음거리가 된 것을 본 예레미야는 비통한 심정으로 애가(哀歌)를 지었다. 예레미야애가는 5편의 시로 구성된 시가서로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유대력 4월 9일에 회당에서 이를 낭독한다.[21][2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를 잡아가고, 그다랴를 유다 총독으로 세워 유다 땅에 남겨둔 빈민을 다스리게 했다.[23] 그다랴는 예레미야의 친구 아히감[24]의 아들이었다. 느부갓네살왕의 선대로 포로에서 석방된 예레미야는 그다랴에게로 가서 함께 지냈다. 하지만 바벨론을 섬길 것을 강변하던 그다랴는 이를 반대하던 이스마엘에게 석 달 만에 피살되었다. 이후 이스마엘은 암몬 자손에게로 도망갔고, 그다랴 휘하의 군대장관 요하난은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백성들을 인솔해 애굽으로 피하려 했다.
애굽으로 가기 전, 요하난과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찾아와 애굽행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가지 말고 유다 땅에 거하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면 느부갓네살왕이 그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하지만 요하난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예레미야와 바룩까지 끌고 애굽으로 도망쳤다. 애굽에서도 예레미야는 우상숭배 하는 백성들을 꾸짖으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훈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동족들에게 매국노로 취급을 받았다. 성문 문지기에게 붙들려 방백들에게 끌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가 하면, 느부갓네살왕이 임명한 유다 총독을 살해한 무리에게 잡혀서 애굽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때로 재앙의 경고를 듣기 싫어하는 백성들에게 재앙을 선포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으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답답해 견디지 못하는 의로운 심령의 소유자였다.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예레미야 20:7-9


유다가 멸망하기 전, 제사장은 물론 선지자와 백성까지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했다. 입술로는 평화를 외치며 행위로는 평화를 파괴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 십자가와 성인 숭배 등 이교에서 유입된 온갖 풍습을 지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형의 역사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 전도서 1:9


성경의 예언은 1차에서 끝나지 않고 반복해서 이루어진다. 패역한 유다 백성을 심판하신 역사는 죄악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예표하고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계시를 통해 다가올 재앙을 선포하며 "견고한 성 시온으로 도피하라"[25] 말한 것도 실상은 최후의 재앙을 앞두고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영적 시온으로 도피하라는 마지막 구원의 기별을 전한 것이다.[26]

같이 보기

각주

  1. 예레미야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2. 열왕기하 23:29-30.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신복들이 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묘실에 장사하니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저에게 기름을 붓고 그 부친을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3. 역대하 35:20-27.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4. 다니엘 1:1-6. 
  5. 예레미야 25: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6. 열왕기하 24장. 
  7. 예레미야 13:1-7. 
  8. 예레미야 18:1-12. 
  9. 9.0 9.1 예레미야 19장. 
  10. 예레미야 24:1-7. 
  11. 예레미야 27:6-11. 
  12. 예레미야 51:59-64. 
  13. "예레미야(Jeremiah)", 《비전성경사전》, 두란노, "예레미야의 성격과 사역: 예레미야를 가리켜 종종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른다. 자기 백성을 벌하지 않으실 수 없는 하나님과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 백성 사이에 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예언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4. 열왕기하 23: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15. 예레미야 20:1.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16. 예레미야 20:2-6. 
  17. 예레미야 28:10-11.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18. 예레미야 28:1.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지 오래지 않은 해 곧 사년 오월에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19. 예레미야 28:17.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칠월에 죽었더라 
  20. 예레미야 29:30-32. 너는 모든 포로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을 인하여 이 백성 중에 거할 그의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선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1. 예레미야 52:5-6. 성이 시드기야왕 십 일년까지 에워싸였더니 그 사월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22. H.H 할레이, 《성서 핸드북》, 박양조 역, 기독교문사, 1992, 341쪽, "이 애가는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4월 9일에 회당에서 낭독하고 있다(렘 52:6)."
  23. 예레미야 40:7. 들에 있는 군대장관들과 그들의 사람들이 바벨론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이 땅 총독으로 세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옮기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24. 예레미야 26: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예레미야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5. 예레미야 4:5-6.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26. 미가 4:1-2.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