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성경)
느헤미야 Nehemia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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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 느, Ne |
구분 | 구약 |
분류 | 역사서 |
장수 | 13장 |
기록 관련 | |
기록자 | 느헤미야 또는 에스라 |
기록 연대(추정) | B.C. 420년경 |
기록 장소 | 예루살렘 |
느헤미야는 구약성경 16번째 책이다. 3차 포로 귀환의 인솔자인 느헤미야가 훼방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과 더불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며 신앙의 개혁을 이루는 일련의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느헤미야서의 기록자
본서는 느헤미야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본서 전반부에는 느헤미야가 1인칭 단수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기록자를 에스라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본서가 히브리 성경에서 에스라서와 더불어 한 권으로 분류되어 '에스라서'로 불렸으며, 본서 후반부에 기록된 포로 귀환자 명단과 여러 족보들,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회개 운동, 초막절, 율법 준수의 맹세와 그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 등은 모두 에스라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느헤미야가 자신을 1인칭으로 지칭한 부분은, 에스라가 느헤미야의 공식적인 보고서를 직접 인용했다고 본다.[1]
시대 배경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던 남 유다 백성들은 기원전 537년경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키루스 2세)에 의해 포로에서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2] 1차로 고레스 원년에 스룹바벨을 인솔자로 하여 5만 명이 귀환 길에 올랐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다(에스라 1-6장). 그로부터 약 80년 후, 아닥사스다 1세(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제7년에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귀환이 이루어졌다.[3]
10여 년이 흐른 뒤, 바사 제국의 왕궁에서 술 관원[4]을 맡고 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불탔으며 백성들은 환난과 능욕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5]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닥사스다왕에게 구하여 예루살렘 성벽 중건에 필요한 조서와 자재를 지원받아 귀환해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다시 건축했다(기원전 444년경). 본서의 전반부(1-7장)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관한 내용이라면, 후반부(8-13장)는 유대 백성들의 신앙 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요 인물
- 느헤미야: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궁정에서 일하던 유대인 관리로 왕의 술 관원이라는 고위직에 있었다. 유다에서 온 형제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되었고, 백성들은 고초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자청해서 예루살렘 총독으로 귀환했다. 그는 이방인들의 끈질긴 방해에도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 역사를 마쳤고,[6] 각지에 흩어진 유다 백성 중 10분의 1을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켰다.[7] 예루살렘에 부임한 12년 동안 가난한 동족을 위해 총독의 보수도 받지 않았다. 그 후 잠깐 바사에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암몬 사람 도비야를 성전의 골방에서 내쫓고, 십일조, 안식일, 잡혼을 시정했다.[8]
- 에스라: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 율법에 익숙한 학사이자 제사장. 율법을 연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가르치겠다는 사명을 품고, 2차 귀환자들과 예루살렘으로 왔다.
- 산발랏: 사마리아 총독인 호론 사람.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한 후 예루살렘은 사마리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려 하자 위협을 느끼고 공사를 방해했다.
- 도비야: 산발랏과 함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한 관리로, 암몬 사람.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예루살렘성이 재건된 후로는 이스라엘 귀족, 제사장들과 인척 관계를 맺었다.
느헤미야의 특징
- 1인칭 시점으로 기록되어, 성전 건축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 느헤미야 통치와 관련한 기록물이지만,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정치·사회·종교적인 상황에 대한 정보가 세세히 담겨 사료(史料)로서 가치가 있다.
- 에스라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히브리 원전에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한 권의 책이었다.
느헤미야의 내용 구성
장 | 내용 | 구분 |
1-3장 | 느헤미야의 귀환과 성벽 재건 공사 | 예루살렘 성벽 재건 |
4장 | 산발랏과 도비야의 훼방 | |
5장 |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책 | |
6-7장 | 재건된 예루살렘 | |
8-10장 | 에스라의 율법책 낭독 | 신앙 재건 |
11장 |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백성들 | |
12장 | 예루살렘성 낙성식 | |
13장 | 느헤미야의 개혁 |
예루살렘 성벽 재건(1-7장)
느헤미야의 귀환과 성벽 재건 공사(1-3장)
바사 왕 아닥사스다 제20년에 바사 제국의 관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았던 동족들이 환난을 당하고 성은 허물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느헤미야는 수일을 슬피 울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다. 몇 달 후 아닥사스다 왕이 근심 가득한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고 까닭을 물었다. 느헤미야는 고국의 상황을 말하고 성벽 중건을 위해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마음이 움직인 왕은 그를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했고, 예루살렘성 재건을 위한 모든 재료와 군대 장관, 마병까지 지원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성을 비밀리에 답사했다.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신 이야기를 전하며 백성들에게 중건 계획을 밝혔다.[9]
산발랏과 도비야의 훼방(4장)
백성들은 모두 힘을 모아 공사에 참여했고, 공사는 구획을 지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예루살렘성 중건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몹시 분개하며 비웃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예루살렘 성벽은 여우만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며 조롱했다. 이들은 공사가 진척되지 못하도록 방해는 물론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성벽이 절반쯤 쌓아 올려지자 몰래 공사 현장을 쳐들어가 백성들을 죽일 계획까지 세웠다.
이를 알게 된 느헤미야는 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자며 백성들을 격려했고 백성 중 일부를 칼과 활로 무장시켜 밤낮으로 보초를 서게 했다. 백성들은 한 손엔 무기를 들고 다른 손은 일하며 대적에 대한 경계를 더욱 철저히 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책(5장)
성벽 재건을 막는 장애물은 또 있었다. 가난한 백성들은 빚을 내어 세금을 내고, 먹을 것이 없어 땅과 집을 저당 잡히고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자식들을 종으로 파는 상황이었다. 느헤미야는 동족에게 돈과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이익을 챙기는 귀족과 관리들을 꾸짖었다. 그의 질책을 받아들인 귀족과 관리들은 가난한 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고, 전당 잡은 밭과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맹세했다. 느헤미야는 총독으로 지내는 12년 동안 녹을 받지 않았고, 예루살렘성 재건에 온 힘을 기울였다.
재건된 예루살렘(6-7장)
성 건축 역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산발랏과 도비야는 느헤미야를 해하기 위해 계략을 꾸몄다. 스마야에게 뇌물을 주어 거짓 예언을 하게 시키기도 했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온갖 훼방을 이겨내고 드디어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적자과 이방 사람들은 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셨음을 느끼고 두려워했다.[6] 느헤미야는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우고 하나니와 하나냐를 예루살렘을 다스릴 지도자로 세웠다. 또한 예루살렘 거민을 경계병으로 세워 성을 지키게 했다.
예루살렘은 크고 넓은 성읍이지만 성안에 사는 인구가 적고 살 만한 집이 없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1차 귀환한 자들의 명단을 정리해서 외곽에 흩어져 살던 제사장, 레위 사람, 일부 백성을 예루살렘성으로 모아 정착하도록 했다.
한편 도비야는 유다 귀족의 사위가 되고, 또 다른 귀족과 사돈을 맺으며 여러 귀족과 결탁했다. 귀족들은 느헤미야에게 도비야를 칭찬하거나 느헤미야가 한 말을 도비야에게 일러바쳤고 도비야는 느헤미야에게 계속 협박 편지를 보냈다.
신앙 재건(8-13장)
에스라의 율법책 낭독(8-10장)
성력 7월 1일(나팔절)에는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배웠다. 15일 초막절에는 규례대로 나뭇가지를 취해 초막을 짓고 그곳에 거하며 7일간 절기를 거룩하게 지켰다. 절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백성들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 금식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버려 침략당했던 지난날을 회개했다. 앞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온전히 지키겠다고 한목소리로 맹세했다.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백성들(11장)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성에 머물렀고, 백성들 중에서 10분의 1이 제비로 뽑혀 예루살렘에 살게 되었다.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머물기로 한 사람은 백성들이 축복해 주었다.[7]
예루살렘성 낙성식(12장)
예루살렘 성곽 낙성식이 열렸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히 하고,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했다. 찬양대는 성벽 위를 걸으며 성전까지 행진하고, 그 뒤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 뒤따랐다.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이날, 성전 직무를 담당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위한 제도도 재정비했다.
느헤미야의 개혁(13장)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총독으로 12년을 지내고 바사로 갔다가 얼마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백성들은 갖가지 죄를 저질렀다.
성전의 방을 관리하는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에게 성전의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 방은 원래 성전 기구와 제물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분노한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세간을 방 밖으로 다 내던지고 그 방을 정결케 하여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하도록 했다. 또한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간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성전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게 했다.
예루살렘성이 완공된 후 백성들은 율법을 준수하며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겠다고 맹세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을 범하는 백성도 생겨났다. 느헤미야는 백성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운반하며 예루살렘에 짐을 지고 들어와서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보고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하고 그들을 꾸짖었다. 안식일 전날, 날이 어두워질 무렵이면 성문을 닫아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못하도록 했다. 그 외에도 이방인과 혼인한 자를 징계하고, 대제사장의 손자가 성 건축을 방해했던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것을 알고 그를 쫓아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이방의 풍습에서 떠나 하나님만 거룩히 섬기도록 온 힘을 기울였다.
각주
- ↑ H.H 할레이, 《성서 핸드북》, 박양조 역, 기독교문사, 1992, 253쪽, "유대인의 오래된 전설에 의하면 에스라는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서의 저자라고 한다. 이 4권의 책은 원래 하나였다. ... 이 책은 부분적으로 1인칭이 사용되었으나, 느헤미야의 공식적인 보고서에서 직접 인용했기 때문이다."
- ↑ 에스라 1:1-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 ↑ 에스라 7:7.
아닥사스다왕 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 ↑ 가스펠서브, "술 맡은 자(cupbearer)", 《라이프성경사전》, 생명의말씀사, 2006, "왕의 식탁에 올리는 술을 담당했던 관리. 고대 사회에서 술에 독약을 타서 왕을 살해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으므로 술관원은 왕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자라야 했다. 따라서 술관원은 왕의 목숨과 직결되는 존재로서 단순한 시중 역할을 넘어 심지어는 국정 깊숙이까지 개입할 정도의 고위층 관리였다."
- ↑ 느헤미야 1:2-3.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 ↑ 6.0 6.1 느헤미야 6:15-16.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 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 ↑ 7.0 7.1 느헤미야 11:1-2.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 ↑ 느헤미야 13:6-7.
그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 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 ↑ 느헤미야 2:13-18.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소화되었더라 ...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