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열왕기하 2 King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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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 왕하, 2Ki |
구분 | 구약 |
분류 | 역사서 |
장수 | 25장 |
기록 관련 | |
기록자 | 미상 |
기록 연대(추정) | B.C. 600년경 |
열왕기하(2 Kings)는 구약성경의 12번째 책으로, 역사서로 분류된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등 선지자들의 행적을 비롯해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최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시대 배경
열왕기하의 시대 배경은 북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 통치 기간부터 남북 왕국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기까지다. 이스라엘 분열 왕국 시대 동안 수많은 왕들이 있었지만, 대다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 기원전 721년경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1] 남 유다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기원전 586년경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다.[2]
열왕기하의 내용 구성
장 | 내용 | 구분 |
1장 | 다른 신을 찾은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 |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적 |
2장 | 엘리야의 승천 | |
3장 |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 | |
4장 | 엘리사가 베푼 기적 | |
5장 | 나아만의 순종과 게하시의 탐욕 | |
6-8장 | 아람의 침공과 위협 | |
9-10장 | 예후가 아합 왕가를 징벌함 | |
11장 | 아달랴의 왕위 찬탈 | |
12장 | 성전을 수리한 유다 왕 요아스 | |
13장 | 엘리사의 마지막 예언 | |
14-17장 |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 |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멸망 |
18장 | 유다 왕 히스기야의 종교개혁과 이스라엘의 멸망 | |
19장 | 유다를 침략한 앗수르 | |
20장 |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 | |
21-23장 | 유다 왕 요시야의 종교개혁 | |
24-25장 | 유다의 멸망 |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적(1-13장)
다른 신을 찾은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1장)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병이 들었다.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병이 나을 수 있는지 물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하시야의 죽음을 예언하셨다. 예언대로 아하시야가 죽고, 그의 형제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엘리야의 승천(2장)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길을 떠나려 하자, 그의 제자 엘리사가 간청하여 엘리야를 따랐다. 요단강에 이르렀을 때,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으로 물을 쳐서 가르고 엘리사와 건너갔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며 걷는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불수레와 불말이 내려왔다. 엘리야는 그것을 타고 회리바람 사이로 승천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의 사명을 받았다.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3장)
아합왕 생전에 북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던 모압 왕 메사가 배반했다. 이에 북 이스라엘의 요람왕은 남 유다의 여호사밧왕과 함께 모압을 치러 올라갔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대로, 이스라엘 군대는 모압 군대를 무찔렀다.
엘리사가 베푼 기적(4장)
엘리사는 여러 가지 기적을 베풀었다. 빚진 과부가 빌려온 그릇마다 기름이 차도록 하여 과부가 기름을 팔아 빚을 갚게 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선대한 수넴 여인에게는 여인의 아이가 죽었을 때 다시 살리는 기적도 행했다. 보리떡 20개로 100명의 무리를 먹이기도 했다.
나아만의 순종과 게하시의 탐욕(5장)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왔다. 엘리사는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만 전했다. 대단한 방법을 기대했던 나아만은 화가 났다. 그러나 신하들의 설득으로 요단강에 몸을 씻자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예물을 바치려 하자 거절했다. 그런데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거짓말로 나아만에게 예물을 받아 집에 감추었다.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옮겨갔다.
아람의 침공과 위협(6-8장)
- 아람 군대의 눈을 가린 엘리사(6장 8-23절)
- 이스라엘과 아람이 전쟁을 벌일 때, 엘리사는 아람 군대가 오는 곳을 알고 이스라엘 왕 여호람(요람)에게 미리 알려주어 방비하게 했다. 아람 왕은 엘리사가 있는 이스라엘 도단 성읍을 포위했다. 엘리사의 종은 아람 군대를 보고 두려워했다. 엘리사는 종의 영안을 열리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아람 군대보다 많은 하늘 군대가 불말과 불병거로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는 모습을 종에게 보여주었다. 반대로 아람 군대의 눈을 가려 그들을 수도 사마리아로 이끌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 군대를 치지 말고, 음식을 먹여 놓아주라고 하였다. 그 뒤로 아람 군대가 다시 이스라엘에 오지 못했다.
- 사마리아를 포위하던 아람 군대가 도망함(6장 24절-7장)
-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했다. 그 기간이 길어지자 사마리아 성안은 기근이 심해져서 백성들이 서로의 아기를 잡아먹는 끔찍한 일까지 일어났다. 이에 이스라엘 왕 여호람(요람)이 통곡하며 엘리사에게 사람을 보냈다. 엘리사는 내일이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 이튿날,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있는 아람 군대는 군대와 전차가 몰려오는 소리를 듣고 놀라 급히 도망했다. 아람 군대가 들은 소리는 하나님이 그들을 내쫓기 위해 내신 소리였다. 성안에 갇혔던 백성들이 아람 군대가 두고 간 음식과 군물들을 취하여 굶주림을 해결했다.
- 예언대로 아람 왕이 된 하사엘(8장)
- 아람에서는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엘리야가 살았을 때에 하나님께 받은 예언대로였다.
- 여호사밧을 이어 유다 왕이 된 여호람은 아합왕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여, 아합이 저질렀던 악을 따라 행했다.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 또한 왕이 되어 아버지와 같은 죄를 지었다.
예후가 아합 왕가를 징벌함(9-10장)
엘리사가 생도를 보내 이스라엘 군대 장관인 예후에게 왕으로 기름을 붓게 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괴롭혔던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기 위함이었다.
예후는 이스라엘 왕이었던 아합의 아들 여호람(요람)과, 유다 왕이었던 아합의 손자 아하시야를 죽였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 또한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예언한 대로 아합 집안의 사람들과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모두 멸절당했다.
아달랴의 왕위 찬탈(11장)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모친 아달랴가 왕자들을 죽이고 자신이 나라를 다스렸다. 아하시야의 막내 아들인 요아스는 고모 여호세바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졌다.
7년 후 제사장 여호야다가 유다 백성들과 함께 바알 산당을 제거하고, 아달랴를 처단했다. 요아스가 7세에 유다 왕이 되었다.
성전을 수리한 유다 왕 요아스(12장)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성전에 바쳐지는 예물로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성전을 수리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려 하자 요아스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성물을 모두 갖다 바쳤다.
요아스는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었다.
엘리사의 마지막 예언(13장)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에 이어 그의 아들 요아스가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엘리사는 요아스가 아람을 세 번 이길 것을 예언하고 죽었다. 엘리사의 예언대로 요아스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아람과 세 번 전쟁했고, 여호아하스 때 잃었던 이스라엘 성읍들을 되찾았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최후(14-25장)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14-17장)
- 유다: 요아스 이후 왕이 된 아마샤, 아사랴(웃시야), 요담 등은 온전하게 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행했다. 그러나 뒤이어 왕이 된 아하스는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신을 좇으며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 이스라엘: 요아스를 이어 여로보암 2세,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등이 왕이 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악을 행했다.
유다 왕 히스기야의 종교개혁(18장 1-8절)
유다 왕이 된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히 행했다. 그는 유다에 가득한 산당을 허물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했다. 또한 백성들이 모세가 만든 놋뱀을 향해 그때까지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숴 버렸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와 함께하셨으므로 히스기야의 모든 일이 형통했다.
이스라엘의 멸망(18장 9-12절)
호세아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군대를 몰고 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에워쌌다. 3년 후,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이스라엘은 멸망했다.[3]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한 결과였다.
유다를 침략한 앗수르(18장 13절-19장)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유다도 침략하려 했다. 앗수르 왕 산헤립(센나케리브)은 종 랍사게를 보내 유다 민족과 하나님을 조롱하며 항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앗수르가 유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돌아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그 밤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앗수르 군대 18만 5000명을 송장으로 만들었다.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20장)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려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과 충성심을 기억하시고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기로 하셨다. 히스기야가 증표를 요구하자 해시계 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다.
바벨론 왕은 사절단을 보내 히스기야를 병문안했다. 히스기야는 사절단에게 이스라엘의 보물 창고, 군기고 등을 모두 보여주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일로 이스라엘의 모든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을 예언했다.
유다 왕 요시야의 종교개혁(21-23장)
히스기야를 이어 므낫세와 아몬이 차례로 유다 왕이 되었다. 그들은 히스기야가 없앴던 산당을 만들어 다시 우상을 숭배했다.
그러나 아몬의 아들 요시야는 왕이 되어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제대로 보수했다.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법과 유월절을 지킨 요시야와 백성들은,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폐하고 우상을 깨끗이 제거했다.
요시야 이후 왕이 된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엘리아김)은 요시야왕과 달리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죄를 지었다.
유다의 멸망(24-25장)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어 악을 행할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2세)이 예루살렘을 침공했다.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고, 여호야긴을 포함한 왕족과 유다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아갔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긴 대신 그의 숙부 시드기야(맛다니야)를 왕으로 삼았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자 바벨론은 다시 예루살렘을 2년 가까이 포위하고 공격했다. 바벨론 군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빈천한 자를 제외한 유다 귀인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지 37년 되던 해에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은 여호야긴을 옥에서 풀어주고, 그가 일평생 풍족히 생활하도록 선대했다.
각주
- ↑ 열왕기하 18:9-10.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 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 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 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 ↑ 열왕기하 25:1-12.
시드기야 구 년 시월 십 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사면으로 토성을 쌓으매 성이 시드기야왕 십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 년 오월 칠 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가고 빈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 ↑ "Shalmaneser V," Encyclopaedia Britan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