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하나님의 교회 지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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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Paul
윌리엄 카트라이트(William Cartwright)가 유증한 유화, 〈사도 바울〉, 제작 시기는 1686년 이전으로 추정
시대A.D. 30-64년경
출생-사망로마 네로 황제 통치 때 순교 추정
출생지다소
활동 지역유대,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
주요 행적유대교 지도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
신약성경 13-14권 집필
1-3차 선교 여행으로 초대교회 확장 기여

바울(Paul, 헬라어: Παῦλος)[1]은 초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한 유대교 지도자였으나 후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신약시대의 대표적인 사도다. 유대 지역에 머물러 있던 천국 복음을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 등에 전파해 초대교회의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바울은 신약성경(27권)의 절반 가량을 기록했다. 소아시아에 위치한 다소에서 태어난 그는 열성 바리새파 출신으로 능숙하게 그리스어를 썼고 로마의 시민권도 갖고 있었다.[2] 바울(파울로스, Παῦλος)은 그의 로마식 이름이고, 유대식 이름은 사울(שָׁאוּל‎)[3]이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의 초반 기록에는 두 이름이 동시에 나오지만 중반부 이후에는 바울로만 기록됐다.

시대적 배경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초대교회 성도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4] 유대교 지도자인 제사장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5] 그러자 유대인들은 날로 교세를 확장하는 그리스도교를 시기하여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이어 초대교회 지도자 중 한 명인 스데반 집사를 신성 모독이란 죄목을 씌워 돌로 쳐 죽였다. 유대교의 청년 지도자 바울(사울)도 그 일에 가담했다.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유대인들의 핍박이 거세지자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진 성도들이 곳곳에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해, 복음은 오히려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6][7]

바울의 생애

성장기

바울이 태어나 성장했던 다소(Tarsus) 지역

바울은 소아시아 남부 길리기아의 수도인 다소(타르수스, Tarsus)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유대교인 부모 밑에서 자라,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8] 성경에는 바울의 가족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친척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누기오 등이 성도의 일원이자 복음의 동역자로 언급되어 있다.[9] 바울은 어린 시절부터 당대 석학인 가말리엘 교법사에게 배워[10] 율법을 깊이 이해했다. 또한 장막 짓는 기술을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훗날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사도직을 수행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11][12][13][14]

청년기(초대교회 박해)

바울이 속한 바리새파는 유대교의 3대 종파(사두개파, 에세네파, 바리새파) 가운데 제일 엄격하게 율법을 준수했고, 과도한 율법주의 신앙에 치우쳐 성경에 없는 관습과 전통을 만들어 지키기도 했다.[15] 율법주의 신앙이 몸에 밴 바울에게, 하나님의 교회는 율법을 어긴 이단이자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는 유대교에서 촉망받는 청년 지도자로서[16]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박해를 주도했다.[17][18] 바울은 스데반이 유대인에게 처형된 사건에 가담해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19] "사울[바울]이 교회를 잔멸할새",[6]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20]라는 성경 기록을 보면, 과격했던 그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다메섹에서 회심[21]

카라바조(Caravaggio), 〈다메섹 가는 길의 회심〉, 1600-1601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체포해 감옥에 넘기는 일을 주도했다. 그가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까지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다마스쿠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추더니 그를 둘러쌌다. 그리고 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땅에 엎드려 있던 바울이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울은 식음을 전폐한 채 기도했다. 3일째 되던 날, 예수님이 아나니아의 환상 중에 나타나 바울을 찾아가게 하셨다.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서 그에게 안수하자 바울은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고 시력이 회복됐다. 이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 사건은 바울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놓았다. 바울은 즉시 여러 회당을 다니면서 그리스도를 전해 많은 유대인을 개종시켰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밤낮 성을 지키자 성도들이 바울을 큰 광주리에 담아 성밖으로 탈출시켰다.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이 거기서도 비슷한 상황을 당하자 형제들은 그를 고향 다소로 피신시켰다.

바나바와 사역[22]

수리아의 중심 도시였던 안디옥복음이 전파되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파송된 사도 바나바의 사역으로 성도들이 더 늘어났다. 바나바는 다소에 있던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려와 1년간 동고동락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성도들이 많아지면서, 이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차 선교 여행

바울과 바나바는 큰 흉년으로 곤경에 처한 유대 교회를 돕기 위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모은 성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했다.[23] 이후 안디옥으로 돌아온 그들은 세계 선교의 중책을 맡았다.[24] 바울 일행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키프로스)섬의 살라미를 시작으로, 밤빌리아의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등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수많은 이방인이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25] 유대인들은 성내 유력자들과 경건한 귀부인들을 선동해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했다. 바울 일행은 이에 개의치 않고 다녀갔던 지역을 다시 방문해 성도들의 믿음을 돌보았다.

구분 내용
기간 A.D. 47-49년경
이동 거리 약 2,544㎞(약 1,581마일)[26][27]
주요 경로 ①수리아 안디옥→②실루기아→③구브로 섬(살라미, 바보)→④버가→⑤비시디아 안디옥→⑥이고니온→⑦루스드라→⑧더베

(귀환 여정)
⑨루스드라→⑩이고니온→⑪비시디아 안디옥→⑫버가→⑬앗달리아→⑭수리아 안디옥

성과 ·헬라계 유대인 성도들이 수리아 안디옥 교회 설립
·이방 지역 수리아 안디옥에 최초 선교사 파견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행로

  • 루스드라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음[28]
장 바티스트 드샹파뉴(Jean Baptiste de Champaigne), 〈돌에 맞는 바울〉, 1667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선천적인 앉은뱅이였던 자를 성령의 힘으로 일으켜 뛰게 했다.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왔다'면서, 바나바를 '쓰스(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허메(헤르메스)'라 부르며 그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려 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며 하나님의 능력을 전했다. 그때 바울 일행을 추격해 온 유대인들이 나타나, 군중을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쳤다. 바울이 쓰러지자 그들은 바울을 성밖에 내다 버렸다. 바울은 기사회생(起死回生)했고 복음 전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다음 날 바울은 바나바와 더베로 가서 많은 이들을 제자로 삼았다.

  • 루스드라를 다시 찾아감[29]

더베에서 일정을 마친 바울 일행은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에 들러 성도들을 돌아보았다. 루스드라는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곳이지만 바울의 행보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마다 장로들을 세워 그들에게 교회를 잘 이끌어달라고 부탁했다.

2차 선교 여행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 마가라 하는 요한을 일행에 합류하는 문제를 놓고 다투다 헤어졌다. 이에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떠났다.[30] 여행 도중에 디모데와 누가도 바울 일행에 합류했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때 소아시아 각지를 거쳐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에 복음을 전했다. 바울의 열정 어린 전도로 간절하게 성경을 상고하는 베뢰아 사람과 헬라의 귀부인 등이 찾아졌다.[31]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무르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구분 내용
기간 A.D. 49-52년경
이동 거리 약 4,909㎞(약 3,050마일)[26][27]
주요 경로 ①수리아 안디옥→②더베→③루스드라→④이고니온→⑤비시디아 안디옥→⑥드로아→⑦네압볼리→⑧빌립보→⑨암비볼리→⑩아볼로니아→⑪데살로니가→⑫베뢰아→⑬아덴→⑭고린도

(귀환 여정)

⑮겐그레아→⑯에베소→⑰가이사랴→⑱예루살렘[32]→⑲수리아 안디옥(귀환)

성과 유럽 지역 최초로 복음 전파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행로

  • 루디아 침례[33]

마게도냐[34] 지역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다가 성문 밖 강가에 모인 여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중에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인 루디아라는 여인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날 루디아와 그녀의 일가족이 유럽 지역 최초로 침례를 받았다.

  • 간수(교도관) 전도[35]

바울과 실라는 거리에서 점을 치는 한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 여종의 주인들은 그녀를 통해 얻어온 수익이 끊기게 되자 바울 일행을 붙잡아 성을 요란케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게 했다. 그날 밤, 바울 일행이 감옥에서 기도하던 중 큰 지진이 나더니 옥문이 열리고 모든 죄인의 결박이 풀렸다. 이에 간수(교도관)는 죄수들이 전부 도망친 줄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했다. 그때 바울이 간수의 행동을 제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전부 성경을 깨닫고 밤 그 시에 침례를 받았다.

  • 철학자들과 변론[36]
조지 백스터(George Baxter), 〈아덴에서 전도하는 바울〉, 1855 이후

바울이 아덴(아테네)에 갔을 때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는 마음이 답답했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있었다.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과 여러 사람을 만나 변론했다. 그중에는 에비구레오(에피쿠로스 학파)와 스도이고(스토아 학파) 철학자들도 있었다. 바울은 이들에게 인류를 한 혈통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존재를 자랑했다. 이에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 아굴라 부부와 동업[37]

바울은 고린도에서 천막 일을 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가정에서 유숙했다. 바울은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그들과 동업하며 생계를 해결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예수님을 전했다. 유대인들의 훼방이 있었지만 회당장 그리스보의 가정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울의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바울을 위로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은 예수님의 계시에 따라 1년 6개월간 고린도에서 지내며 복음을 전했다.

3차 선교 여행

바울은 안디옥에 잠시 머무른 후 다시 선교 여행을 떠났다. 1, 2차 선교 여행 때 갔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니며 성도들의 믿음을 다졌다.[38] 이후 에베소, 드로아, 마게도냐(마케도니아), 아가야, 밀레도 등에서 복음을 전했다.

구분 내용
기간 A.D. 53-58년경
이동 거리 약 5,322㎞(약 3,307마일)[26][27]
주요 경로 ①수리아 안디옥→②갈라디아 일대→③브루기아 일대→④에베소→⑤드로아→⑥마게도냐→⑦아가야→⑧빌립보

(귀환 여정)

⑨드로아→⑩앗소→⑪미둘레네→⑫밀레도→⑬바다라→⑭두로→⑮돌레마이→⑯가이사랴→⑰예루살렘

성과 1·2차 선교 여행지를 되찾아가 성도들의 믿음을 다짐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행로

  • 아데미 여신 숭배자의 소동
외스타슈 르쉬외르(Eustache Le Sueur), 〈에베소에서 전도하는 바울〉, 1649

하나님의 말씀이 힘 있게 퍼져 나가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 전부 말씀을 접했다. 바울은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복음을 전했다. 그때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의 은감실(銀龕室)을 만들어 팔던 자가 바울에게 불만을 품고 상인들을 선동하여 소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를 붙잡아 놓고 아데미 여신을 외치며 온 성을 요란케 했다.[39] 시간이 흘러 소동이 진정되자 바울은 성도들을 격려한 뒤 마게도냐로 떠났다.[40]

  • 죽음을 각오한 예루살렘행(行)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만나 다음 행선지가 예루살렘임을 알리고,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기까지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는다'라며 굳은 결심을 전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다시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니 교회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장로들은 바울을 다시는 못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울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41]

바울 일행이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의 집에 머무를 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되어 수난당할 것을 예언했다. 성도들은 바울을 걱정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떠나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바울은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예루살렘행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전했다.[42]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 사도행전 21:13


  • 바울의 선교 유적지 사진

예루살렘에서 체포[43]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감옥 안의 바울〉, 1886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도들에게 그동안의 선교 활동을 보고했다. 성도들은 이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며칠 후, 아시아에서 유대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선동하여 '바울이 율법과 성전을 훼방했다'고 외쳤다. 이에 온 도시가 소란해졌고, 사람들이 몰려와 바울을 죽이려 했다.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오자 소요가 진정되었다. 천부장은 바울을 쇠사슬로 결박했다. 바울은 수많은 유대인 앞에서 자신이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회심한 과정을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백성들이 분개하여 바울을 죽이려 들자 천부장은 바울을 부대 안으로 데려갔다.

천부장은 부하들에게 바울을 채찍질하고 소란이 일어난 경위를 밝히라 했다. 이때 바울이 곁에 있던 백부장에게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로마 시민에게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고 벌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이에 바울을 심문하려던 자들이 모두 물러갔다. 그날 밤, 예수님이 바울의 곁에 나타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44]

1차 투옥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바울은 생질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전하게 가이사랴에 도착했다. 총독 벨릭스(Felix, 펠릭스)는 바울의 무고함을 알았지만 유대인의 반발을 우려해 천부장 루시아가 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재판을 받지 못한 채 가택 연금 상태로 갇혀 지냈다.

아그립바왕 앞에서 전도[45]

벨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베스도(Porcius Festus, 포르키우스 페스투스)가 부임하자 대제사장과 유대인 고위 간부들이 바울을 고소했다. 이에 가이사랴에서 바울의 재판이 다시 열렸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며 여러 죄목을 들어 바울을 고소했으나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바울은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했다.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려고 유도했으나, 바울은 이를 거절하며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침 베스도를 방문한 아그립바(헤로데 아그리파 2세)왕은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심문해 보기를 원했다. 아그립바왕 앞에 선 바울은 당당하게 예수님을 전했다. 이후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겠다는 청원대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됐다.

2차 투옥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셋집에 갇혀서 군사의 감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전도 열정은 식지 않았다.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자신이 로마에 오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사상이 궁금하다며 직접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이에 날짜를 정해 바울의 집에 모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경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바울은 약 2년 동안, 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그리스도에 대해 알려주었다.[46] 그리고 옥중에서도 성도들과 교회를 염려하여 4편의 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을 썼다.[47] 이 서신들은 바울의 동역자 편으로 개인이나 교회 등에 전달되었다.

마지막 행적

마티아 프레티(Mattia Preti), 〈바울의 순교〉, 1656–1659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등에는 사도행전에 없는 바울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볼 때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후로도 수년간 복음을 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이 스페인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다는 전설도 있다.[48] 초대교회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죽음은 64년 네로 황제가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씌워 300명가량을 처형시킨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49][50]

바울의 영향력

바울서신

신약성경(총 27권)은 베드로, 사도 요한, 누가, 마태 등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록한 13권과 바울이 쓴 14권으로 나뉜다.[51]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전체 신약성경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 글들은 바울이 편지 형식으로 써서 '바울서신'으로도 불린다. 바울이 교회에 보낸 서신은 총 9편(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이며, 개인에게 보낸 서신은 4편(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특정계층(히브리인)에게 쓴 서신은 1편(히브리서)이다. 서신의 대상이나 서신을 썼던 장소에 따라 '목회서신'(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이나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최초 해외 선교사

바울은 초대교회 당시 복음을 세계로 전파한 최초의 해외 선교사다. 그는 해외 선교 과정에서 예수님의 예언대로 이방인, 임금, 이스라엘 백성 등에게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했다.[52]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바울이 다닌 선교 여행의 거리는 약 1만 6000여km(1만 마일)에 달한다.[53][26][27] 이는 서울에서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 편도로 이동한 거리에 해당한다. 여행 지역은 오늘날 기준으로 9개 국가, 약 50개의 도시 및 장소에 속한다.[54] 지역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여행한 배경에는 '로마 시민권자'라는 그의 신분이 주효했을 것이다.[55]

교훈

복음 전도에 헌신

로랑 드라이르(Laurent de La Hyre), 〈몰타에서 난파된 바울〉, 1630

바울은 한마디로 '전도의 생애'를 살았다. 높은 학식을 가진 권세자로서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세속의 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56] 오직 복음 전도에 집중했다. 선교에 드는 여비는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자신이 충당했으며[12] 생명도 아끼지 않고 전도자의 사명을 다했다.[57] 이렇게 복음에 헌신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직감한 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았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디모데후서 4:6-8

하나님을 의지

바울은 로마와 지중해 연안을 수차례 다니며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했다. 그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살해 위협, 심한 폭력과 매질, 시내·광야·강·바다의 위험, 헐벗음과 굶주림, 거짓 형제와 동족의 배반, 강도의 위험, 성도들의 모함과 비방, 육체의 질병 등을 겪었다.[58][59][60] 바울은 고난을 당할 때 고통스러워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61] 그러나 그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해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62][63]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살아도 주를 위해서'라는 믿음의 각오를 가지고 복음에 임하니[64]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좋은 복음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

바울은 선교 여행에서 새 성도의 믿음을 돌보는 데 거의 절반이 넘는 일정을 할애했다. 성도들의 믿음을 돌보기 위해, 자신이 죽을 뻔했던 지역을 다시 들르기도 했다. 또 교회 내에서 구약의 율법이나 유대인의 구습을 좇는 이들을 바로잡기 위해 일일이 찾아가거나 서신을 써서 보냈다. 그의 선교는 복음을 전하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성도들이 현지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신앙을 제대로 이끌어 줄 신실한 목회자들을 세웠으며, 교회와 성도들의 안위를 늘 염려하고 돌보았다. 이를 위해 약한 이들에겐 약한 자처럼,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다가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65]

관련 영상

  • 설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 설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같이 보기

각주

  1. Παῦλος. 《네이버 고대 그리스어사전》
  2. "바울로",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 제8권,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3, 532쪽, "그곳에 사는 많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그는 로마 시민권을 상속받았다. ... 그는 엄격한 유대교 교육을 받았지만 그리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세계 도시를 경험하기도 했다."
  3. שָׁאוּל. 《네이버 고대 히브리어사전》
  4. 사도행전 2장. 
  5. 사도행전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6. 6.0 6.1 사도행전 8:1-5.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7. 사도행전 11:19-20.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8. 빌립보서 3: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9. 로마서 16:7, 11, 21. 
  10. "가말리엘", 《두산백과 두피디아》, 사도시대에 덕망과 학식이 높았던 랍비로서 그리스 문학을 연구한 바리새 파(派)의 한 지도자였다. ... 그리스도교 최대의 선교사인 사도 바울로의 율법 선생이었다.
  11. 사도행전 18:1-3. "이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12. 12.0 12.1 사도행전 20:33-35. 《새번역》,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나는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일해서 마련하였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13. 고린도후서 12:13-15.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14. 데살로니가전서 4:10-12. "형제들아 ...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5. "바리새인", 《아가페성경사전》, 아가페서원, 1991, 556쪽
  16. 가스펠서브, "바울", 《라이프성경사전》, 생명의말씀사, 2006, "행 7:58에 언급된 '청년'이라는 헬라어 단어 '네아니온'은 25-40세 어간의 연령층을 말한다. 그렇다면 당시 바울은 유대교 내에서 실력과 야망(열심)을 겸비한 30세 전후의 젊은 지도층 인사로 촉망받고 있었을 것이다."
  17. 갈라디아서 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8. 사도행전 22:4-5. "내[바울]가 이 도[그리스도교]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가더니"
  19. 사도행전 7:58-59, 8:1-2.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 사울이 그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20. 사도행전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1. 사도행전 9장. 
  22. 사도행전 11:19-26. 
  23. 사도행전 11:28-30. "그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24. 사도행전 13:1-4.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25. 사도행전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26. 26.0 26.1 26.2 26.3 Bill Creasy, "A Question on St. Paul's Journeys," Logos Bible Study, May. 6. 2021.
  27. 27.0 27.1 27.2 27.3 "Calculating the Time and Cost of Paul's Missionary Journeys," Openbible
  28. 사도행전 14:8-21.
  29. 사도행전 14:21-23.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
  30. 사도행전 15:36-41.
  31. 사도행전 17:11-12.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32. 사도행전 18:22. 《새번역》, "바울은 가이사랴에 내려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문안한 뒤에, 안디옥으로 내려갔다."
  33. 사도행전 16:11-15.
  34. 마게도냐, 즉 마케도니아(Macedonia, Makedonia)는 신약성경에 22회 등장하는 지명으로, 현재의 발칸 반도인 아가야(그리스)의 남쪽에 위치하는 마가돈의 필립이 통치했던(B.C. 359-336) 왕국이며 수도는 펠라(Pella)이다.
  35. 사도행전 16:16-34.
  36. 사도행전 17:16-34
  37. 사도행전 18:1-11.
  38. 사도행전 18: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39. 사도행전 19:21-41.
  40. 사도행전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41. 사도행전 20:17-38.
  42. 사도행전 21:8-17.
  43. 사도행전 21:27-22:29.
  44. 사도행전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45. 사도행전 24:27-26:32.
  46. 사도행전 28:16-31.
  47. 가스펠서브, "옥중서신", 《라이프성경사전》, 생명의말씀사, 2006, "사도 바울이 쓴 편지 가운데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네 편의 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을 말한다. 집필 당시 사도 바울이 갇혀 있던 곳이 A.D. 61-63년경 로마의 감옥이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48. 이성호, "바울", 《성경대사전》, 성서연구원, 2000, 624쪽, "[바울의] 사도행전 후의 자세한 소식은 불명이다. 그러나 바울은, 2년 동안 연금 후 석방되어, 그 후도 수년 동안 일한 것으로 보여진다. 디모데전서, 후서와 디도서 중의 기사는, 사도행전에는 찾아 볼 수 없는 바울의 활동을 전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스페인까지 전도했다고 한다."
  49. "64년 로마 대화재, 네로 소행?", 《서울경제》, 2019. 7. 18., 인명피해에 대한 기록도 전혀 없는 로마 대화재와 관련된 진실은 딱 하나다. 황제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방화설이 퍼지고 황제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자 네로는 국면전환용으로 로마에 거주하던 기독교인 약 3,000명 가운데 10%를 잔혹하게 죽였다.
  50. 가스펠서브, "바울", 《라이프성경사전》, 생명의말씀사, 2006, "[바울은] A.D. 64년경 로마 대화재로 인한 네로의 기독교인 박해가 극에 달한 때에 재차 체포되어 A.D. 67년경 로마 인근 오스티안 가도에서 순교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51. 학자들 사이에 이견은 있지만 히브리서는 대다수 학자들이 바울이 쓴 것으로 추정한다(《교회용어사전: 교리 및 신앙》등 참고).
  52.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바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53. 바울의 선교 여행 거리에 대해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1-3차 선교 여행 외에 약 3757km(약 1810마일)에 달하는 여정(예루살렘에서 로마 감옥 이송거리, 사도행전 외 기록 등)을 추가로 합산하는 학자들도 있다.
  54. 김성, 〈사도 바울의 선교여정 연구: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와 동 지중해의 해상교통을 중심으로〉, 《서양고대사연구》 제21호,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07, 119쪽
  55. 김성, 〈사도 바울의 선교여정 연구: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와 동 지중해의 해상교통을 중심으로〉, 《서양고대사연구》 제21호,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07, 141쪽
  56. 빌립보서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57. 사도행전 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58. 사도행전 23:12-14.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59. 고린도후서 11:23-28.
  60. 고린도후서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61. 고린도후서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62. 빌립보서 4:12-1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63. 로마서 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64.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65. 고린도전서 9:20-23.